사진 이전과 이후의 그림 그리고 지금의 사진

우리는 아름다운 사진을 보면 '그림 같다'라고 감탄합니다. 반면 그림을 '사진 같다'라고 표현하면 어딘지 모르게 조금 불편해집니다. 카메라의 등장은 수많은 화가들을 거리로 내몰게 됩니다. 사진은 찰나의 순간을 정교하게 담아낼 수 있는 기기이자 매체였고 그림은 자신의 자리를 빼앗기고 새로운 방향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사진 이전의 그림


램브란트-자화상
Rembrandt van Rijn - Self-Portrait - Google Art Project


카메라가 없던 시절, 그림은 자신의 존재를 남기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예전 유럽의 귀족들은 자신의 모습을 영원히 남기기 위해서 화가 앞에 앉아 꽃단장을 위해 멋진 옷을 입고 멋진 포즈를 취한 상태로 1시간이고 2시간이고 버텨야만 했습니다.

당연하게도 포즈를 취하는 모델의 컨디션에 따라 초상화의 작업 시간과 전체 일정도 달라졌습니다. 장시간 같은 자세로 서 있거나 앉아 있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문에 화가는 하루에 두세 시간씩 나눠서 작업하거나 며칠에 걸쳐서 완성하는 식이었죠. 

초상화 작업은 대부분 귀족들의 요청으로 시작되기 때문에 화가는 그림의 의뢰자가 있는 곳으로 방문해서 그들이 원하는 장소를 배경으로 그림을 그리곤 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당시 그림의 가치는 인물과 사물을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묘사하는 일에 달려 있었고, 이는 곧 화가의 실력과 명성으로 이어지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실력이 좋은 화가들은 귀족을 그리거나 궁에 들어가 왕실 화가로 활동하길 원했습니다. 그것은 더 높은 보수와 사회적 인맥 그리고 고용 안정성이 확보된 최고의 출세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진 이후의 그림

1830년대 전후 시기, 헬리오그래피 기술을 바탕으로 비밀스럽게 개발되어 오던 카메라가 세상에 태어납니다. 최초로 사진술을 발명한 프랑스의 예술가이자 화학자였던 루이 다게르(Louis Daguerre)는 약 10여 년의 실험을 통해 은판 사진술 혹은 다게레오타이프(daguerreotype)라 불리는 사진술을 완성합니다. 빛에 반응하는 물질을 바른 감광판을 수은 증기에 쏘여 상이 눈에 보이도록 현상한 후 소금 용액을 이용해 요오드화은을 동판에서 제거하는 방법이었습니다. 


다게레오타이프-발명자-루이-다게르의-초상사진
Daguerreotype of Louis Daguerre in 1844 by Jean-Baptiste Sabatier-Blot, ©Wikipedia


카메라가 등장한 이후로 많은 이가 그림이 아닌 사진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오랜 시간 힘들게 포즈를 취하지 않아도 자신의 기록을 남길 수 있었기 때문에 '인생 네 컷 사진관'이 도처에 깔려있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당시 유럽은 자신의 모습을 남기는 유행이 불길처럼 번져갔습니다. 

그렇게 화가들은 그림이 사진에게 자리를 빼앗기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이제 사실적인 초상화는 카메라가 손쉽게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작업 속도도 획기적으로 빨라졌으니 말입니다.

미술작가들은 이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해야만 했습니다. '매가 약이다' 말이 있듯이 실제로 이 위기를 계기로 미술은 한층 더 발전하게 됩니다. 바로 카메라가 할 수 없는 것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하게 된 것입니다. 카메라가 없던 시절에는 현실을 재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그림이었습니다. 하지만 카메라가 생기고 나서부터는 현실을 그대로 옮기기만 하는 그림은 더 이상 전혀 특별하지 않았습니다.


내면의 세계에 들어간 미술

당시 젊고 열망 있는 화가들은 카메라 렌즈를 통해 보이는 단순한 피사체의 모습이 아닌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매일 아침 눈을 떠서 저녁 잠자리에 들 때까지 아침. 점심, 저녁, 빛과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색을 자신만의 해석을 담아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인상-해돋이-모네
인상파의 시작, 인상 해돋이-모네


이 시대 등장한 화가들은 자신의 주관적인 감정을 화폭에 담기 시작했고 자신들만의 독특한 미술 양식을 구축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성에 관한 한, 재현이라는 기능에 관한 한 미술은 사진을 절대 따라갈 수 없다는 점이 너무나도 명백했습니다. 그래서 화가들은 다른 방면으로 사진을 극복합니다. 위에 보이는 작품 '인상 해돋이' 이는 바로 인상주의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었습니다. 또한 후기 인상주의에 속하는 고흐의 작품에서는 얼굴에 청록색이 스며들어갑니다. 사진이 할 수 없는 독특한 묘사입니다.


빈센트-반-고흐-자화상-1887
빈센트 반 고흐-자화상 1887


이러한 과정을 거친 예술은 사실 그대로를 재현하는 역할에서 화가 개인의 주관이 담긴 시각을 표현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인상주의가 인정받고 사랑받는 데는 다소 시간이 필요했지만 점점 일반 대중들도 이렇게 사진과 구별되는 독특한 작품들을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소비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사진의 발달은 피카소나 고흐처럼 세상을 창조적인 시각으로 표현하는 새로운 예술가들을 탄생시키면서 자신들의 가치와 예술의 가치를 높였습니다. 카메라의 탄생이 예술의 발전을 불러온 셈입니다.


결론

여기까지 하나의 존재가 다른 존재에게 영향을 미치고 또 발전해 나가는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 한국의 많은 사진작가들이 사실 그대로의 재현만으로 자신들의 가치로 한정하고 있는 것은 아주 가슴 아픈 일입니다. 

조금 심하게 말해 '무보정 사진'이라는 말은 캐논이나 니콘 그리고 소니에서 정해놓은 18% 그레이 기준의 밝기와 그 회사들이 기준으로 하는 'RGB 색상 도출 함숫값'의 결정체입니다. '무보정' 세상에서 작가 본인이 한 것은 무겁게 카메라를 산으로 들로 들고 다니면서 비싼 삼각대 위에 카메라를 편하게 앉혀드리고 적당히 노출값을 정하기 위해 한 클릭 두 클릭 개입한 것 정도에 불과한 셈입니다. 

또한 좋은 사진의 기준이 되는 많은 사진 공모전들이 어쩌면 한국 사진계 발전에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날의 사진 공급자(?)들에게 유행하는 풍경을 포함한 많은 사진들의 경우 마치 낚시와 같이 '포인트 싸움'이 되고 있으니깐요. 그래서 한번 보고 자고 나면 잊히는 사진들이 대부분입니다.

사진이 조금 더 그 가치를 인정받고 오랫동안 사랑받기 위해서는 사진이 가지는 강점을 활용하여 보다 더 자유롭게 작가 개개인의 주관과 해석을 담아야 할 것입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감독 봉준호 감독은 오스카 감독상을 받는 자리에서 다음과 같이 마틴 스콜세지감독에게 자신의 소감을 전했습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노력이 AI 시대를 맞이한 우리에게 작은 희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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